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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창업자들은 자신의 사업을 글로 잘 설명하지 못할까?

머릿속에선 완벽한데, 왜 글로는 안 될까

스타트업 멘토링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대표님이 본인의 사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듣는 사람은 “이해가 잘 된다”며 고개를 끄덕이죠.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을 사업계획서로 받아보면, 설명과 전혀 다른 느낌의 문서가 나옵니다. 논리적 흐름은 엉성하고, 고객보다는 제품 위주로 서술돼 있고, 핵심 메시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가 자주 하는 말이 있죠.
“대표님, 아까 말씀하신 걸 그대로만 쓰셔도 훨씬 좋을 텐데요.”
그런데 이게 단순히 ‘글을 못 쓴다’는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이 현상은 인지 심리학, 조직 이론,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교차하는 꽤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대표님의 머릿속에는 명확한 그림이 있다고 느끼시지만, 막상 그것을 글로 표현하려 할 때는 생각보다 말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머릿속 사고는 감각과 직관에 의존한 '암묵지'이고, 글은 그걸 외부인이 이해할 수 있게 구조화한 '형식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창업 초기의 아이디어나 사업 모델은 감정적으로 강하게 몰입돼 있어, 자기 생각을 객관화하고 언어로 정리하는 데 큰 심리적 저항이 따릅니다.
비슷한 경험, 많으시죠? 대표님은 "분명히 머릿속에 있는데 왜 안 써지냐"고 답답해하고, 멘토는 "머릿속에만 있는 걸론 설득이 안 됩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간극의 핵심에는 세 가지 요인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입말과 글말의 차이’입니다. 말은 맥락을 공유한 채로 빠르게 전달되지만, 글은 논리의 연결, 정보의 구조화, 독자의 이해를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로는 자연스럽던 설명도 글로 옮기면 어색하거나 단절돼 보이죠.
둘째는 ‘대표자 중심 사고’입니다. 내가 직접 만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애착이 크다 보니, 객관적 수요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 위주로 설명이 전개되기 쉽습니다. 글로 옮기는 순간, 이 편향이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셋째는 ‘표현 역량의 미숙함’입니다. 특히 기술 중심 창업자의 경우, 문장을 구성하거나 흐름을 설계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 내용은 훌륭해도 문서 완성도는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생각의 구조화 훈련'입니다. 대표님들께는 ‘바바라 민토의 피라미드 구조’를 많이 소개해드리는데요, 결론을 먼저 말하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와 예시를 구조화하는 방식입니다. 이걸 연습하면 글의 논리 흐름이 훨씬 자연스러워지고, 독자가 이해하기도 쉬워집니다. 또 하나 유용한 방법은 질문 기반 설계입니다. “고객은 누구인가요?”, “그들이 겪는 문제는 무엇인가요?”, “왜 기존 해결책은 부족했나요?”와 같은 질문을 차례로 던지며 생각을 언어화하는 거죠. 실제 멘토링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구술 인터뷰 형태로 진행한 뒤, 그 내용을 정리해서 초안을 만드는 방식이 꽤 효과적입니다. 이를 통해 대표님의 사고를 말 → 구조화 → 글이라는 세 단계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멘토링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종전처럼 멘토가 일방적으로 코멘트만 하는 방식보다는, 대표자의 말과 생각을 시각적 도식이나 요약본으로 중간 가공한 뒤 함께 검토하는 ‘해석형 멘토링’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를테면 대표자가 설명한 내용을 멘토가 5개 슬라이드로 정리해주고, 그걸 바탕으로 다시 문장화하도록 유도하는 식이죠. 이렇게 하면 창업자는 ‘내 생각이 이렇게 보이는구나’라는 인식과 함께, 본인의 사고를 더 정제하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또, 글쓰기가 막막한 대표님들에게는 서술 템플릿과 실제 사례를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 고객은 누구이며, 어떤 문제를 겪고 있고,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해결하는가” 같은 문장 틀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점차 자신의 언어로 전환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활용해 보면 4회 정도의 멘토링이 진행될 경우 어느 정도의 완성된 정부지원사업용 사업계획서가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표님들이 열심히 하신 다는 가정하에서 말입니다
글쓰기는 단순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사고를 정리하고, 타인의 관점에서 사업을 다시 바라보는 도구입니다. 대표자가 본인의 사업을 명확히 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건 사업 자체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회피하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생각을 다듬고 외부와의 소통을 개선하려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멘토 입장에서도 이 과정에 더 깊게 개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업자 스스로 “이건 내 제품 자랑이 아니라, 고객을 위한 해결책이어야 한다”는 시각 전환이 일어날 때, 비로소 그 글은 '읽히는 글'이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사업도 한 단계 더 정교해지는 겁니다.